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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글 171

Even a king couldn't freely read the royal annals? Why Sejong was denied access

November 8, 1446 (lunar calendar).​King Sejong issued an order.​[Photo] An original volume of the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from the Taebaeksan archive | Source: Korea Heritage ServiceHe ordered the Annals of King Taejo brought into the palace so that relevant historical passages could be checked for work connected to the Yongbieocheonga.​There was a reason.At the time, the court was checking..

읽고 12:00:33

왕도 자기 실록을 마음대로 못 봤다고?

1446년 11월 8일.​세종이 명령을 하나 내립니다. ​​​『태조실록』을 안으로 가져오라는 것이었습니다.​이유도 있었습니다.​당시는 『용비어천가』와 관련된 옛 사실을 확인하던 때였습니다.​왕이 나라의 기록을 좀 보겠다는데,뭐가 문제였을까요?​그런데 춘추관에서 바로 반대합니다.​실록은 사관이 아니면 볼 수 없다는 겁니다.​세종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더 재미있는 건 그다음입니다.​세종은 밀어붙이지 않았습니다.​실록을 안으로 들이라는 명령을 거두고,사관인 어효첨과 양성지에게 필요한 부분만 뽑아서 올리게 합니다.​저는 이 기록을 처음 보고 조금 놀랐습니다.​세종인데요.​조선에서 가장 강력한 왕 가운데 한 명인데요.​그런 왕에게도 “그건 직접 보시면 안 됩니다”라고 말한 겁니다.​그리고 실제로 왕이 한발 물러..

읽고 10:55:46

김부식은 왜 굳이 『삼국사기』를 다시 썼을까?

1145년.국보 『삼국사기』 실물 | 출처: 국가유산청​​​고려 인종 앞에 한 권의 역사책이 올라옵니다.​정확히는 한 권이 아닙니다.​본기, 지, 표, 열전을 합쳐 모두 50권.국보 『삼국사기』의 다른 면 | 출처: 국가유산청​​​지금 우리가 『삼국사기』라고 부르는 책입니다.​책임 편찬자는 김부식.​그래서 학교에서는 이렇게 외웠습니다.​“삼국사기 = 김부식 = 1145년.”​저도 그렇게 외웠습니다.​그런데 다시 읽다 보니 궁금해졌습니다.​삼국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습니다.​고구려와 백제는 7세기에 무너졌고,신라도 10세기 초에 끝났습니다.​그런데 12세기 고려 사람들이 왜 수백 년 전 삼국의 역사를 다시 정리해야 했을까요?​다행히 김부식은 이유를 남겼습니다.​『삼국사기』를 인종에게 올리면서 함께 쓴 글,..

읽고 10:10:31

이완용은 처음부터 친일파였을까?

1905년 11월 17일.​덕수궁 중명전.중명전. 을사늑약 체결 논의가 벌어진 장소 | 출처: 『덕수궁사』 / Wikimedia Commons​​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일본에 넘길 것인가.​나라의 운명이 걸린 회의가 열렸습니다.​그런데 이상합니다.​정작 대한제국의 황제, 고종은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고종은 조약 체결을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은 군사적 압박 속에서 대신들을 상대로 찬반을 몰아붙였습니다.​참정대신 한규설은 끝까지 반대했습니다.​그리고 회의장에서 끌려나가 다른 방에 있게 됩니다.​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그때 조약문을 고쳐서라도 받아들이자는 쪽으로 움직인 대신들이 있었습니다.​그 가운데 한 사람이 학부대신 이완용이었습니다.​결국 이완용, 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권중현.​우리가 ‘을사..

읽고 2026.10.21

李完用從一開始就是親日派嗎?

1905年11月17日。​德壽宮重明殿。​【圖片】德壽宮重明殿,1905年《乙巳勒約》協議的發生地(照片刊載於1938年出版的《德壽宮史》)|來源:《德壽宮史》/Wikimedia Commons大韓帝國是否要將外交權交給日本?​一場攸關國家命運的會議正在進行。​可是,有件事很奇怪。​大韓帝國的皇帝高宗,竟然不在會場。​高宗拒絕締結條約。日本則在軍事壓力之下,逼迫大臣們表明是否接受。​參政大臣韓圭卨始終反對。​接著,他被帶離會場,留在另一個房間。​會議的氣氛頓時改變。​有些大臣開始主張,即使修改條約文字,也應接受條約。​其中一人,就是學部大臣李完用。​最後,同意締約的五名大臣分別是李完用、朴齊純、李址鎔、李根澤與權重顯。​這五名大臣因同意締約,被後世稱為「乙巳五賊」。​【圖片】1905年《乙巳勒約》的韓文文本(2011年拍攝)|攝影:RYU Cheol/Wikimedia Common..

읽고 2026.10.21

李完用は、最初から親日派だったのか?

1905年11月17日。​徳寿宮の重明殿。​【写真】乙巳勒約の締結をめぐる協議が行われた徳寿宮・重明殿(1938年刊行資料所収の写真)|出典:『徳寿宮史』/Wikimedia Commons大韓帝国の外交権を日本に渡すのか。​国の運命が懸かった会議が開かれていました。​ところが、奇妙なことがあります。​大韓帝国の皇帝、高宗はその場にいなかったのです。​高宗は条約締結を拒んでいました。日本は軍事的圧力を背景に、大臣たちに賛否の表明を迫りました。​参政大臣の韓圭卨は、最後まで反対しました。​そして会議場から連れ出され、別室に置かれることになります。​場の空気は一変しました。​条約の文言を修正してでも受け入れようとする大臣たちが現れます。​その一人が、学部大臣の李完用でした。​李完用、朴斉純、李址鎔、李根沢、権重顕。​この5人が、条約締結に同意した「乙巳五賊」として知られる大臣たちです。​【..

읽고 2026.10.21

여성 교육의 선구자 김활란은 왜 전쟁 참여를 독려했을까?

1918년 3월.​이화학당 대학부에서 첫 졸업생들이 나옵니다.​그 가운데 김활란이 있었습니다.​한국 최초의 여성 대학 졸업자로 알려진 인물입니다.​[사진 1] 1918년 이화학당 대학부 졸업사진 | 출처: Wikimedia Commons김활란의 초기 경력은여성 교육의 역사에서 빼놓기 어렵습니다.​이화학당에서 공부했고,미국 유학을 다녀왔고,여성 교육과 기독교 여성운동에 참여했습니다.​3·1운동 때에는 비밀결사 활동에 참여했고,1920년대에는 YWCA 창립과 여성 사회운동에 힘을 보탰습니다.​[사진 2] 1925년 YWCA 활동 당시 김필례(왼쪽)와 김활란(오른쪽) | 출처: Wikimedia Commons​1928년에는 머리를 짧게 자른 김활란의 사진이 남아 있습니다.​당시 여성의 새로운 삶과 교육,사회 ..

읽고 2026.10.21

等等,歷史紀錄裡到底寫了什麼?

有時候讀到歷史文章,總覺得哪裡不太對勁。明明是同一個人,有人稱他為英雄,有人卻說他出賣國家。同一件事也一樣。「這才是真正的歷史。」「不對,那是在扭曲歷史。」可是,只要把留言往下滑幾則,大家談的就不再是歷史了。你是哪一邊的?他又站在哪一邊?結果又吵了起來。​一開始,我也只是滑過去。同一段歷史,本來就可能有不同解讀;一旦牽涉政治,爭論自然更激烈。我是這麼想的。但看久了,有個問題卻一直留在心裡。​等等,所以當時留下的紀錄,到底寫了什麼?​先別管誰說得最大聲。也別管誰的留言最多。我想親自看看,那個時代的人究竟留下了哪些文字。​一查才發現,能看的資料比想像中多得多​以前總以為,要直接查閱古代史料是件很困難的事。似乎得精通漢文、走進大型圖書館,甚至只有歷史學者才能接觸。但實際查找後,我發現並不是如此。​韓國國史編纂委員會設立的「韓國史資料庫」,公開了從古代到近現代的各種史料。截至2025年1月,資..

읽고 2026.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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